독일 평화의 소녀상 건립 배경
독일 내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처음 제안한 것은 수원시였다. 2014년 5월 수원 시청 앞 시민 모금으로 세운 소녀상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면서 수원시가 프라이부르크시에 제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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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프라이부르크시의 디터 잘로만(Dieter Salomon) 시장은 프라이부르크 시내 소녀상 건립을 제안한 수원시에 해당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수원시 75개 기관·단체가 모여 ‘수원시 국제자매도시 독일 프라이부르크 평화의 소녀상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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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금 활동을 했지만 일본 정부와 일본 우익들의 조직적인 방해와 압박으로 인해 같은 해 9월 소녀상 건립이 무산되었다.
그럼에도 수원시는 독일 각지의 한인단체와 한인교회 등을 돌며 소녀상 건립을 위한 노력을 놓지 않았다. 2017년 3월 유럽 지역 내 최초로 독일 남부 비젠트 지역에 소녀상을 세울 수 있었다.
독일에 평화의 소녀상 건립
네덜란드, 캐나다, 유럽의회 결의안이 미국의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과 유럽 스피킹 투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면, 독일의 ‘위안부’ 결의안은 독일 내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으로 인해 채택되게 되었다. 2015년부터 독일 내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거론되었지만, 소녀상을 ‘반일(反日)의 정치’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해석하는 일본 정부와 ‘일본에 대적하는 한국이란 프레임’ 전략, 소녀상 건립 반대 운동, 그리고 독일과 일본 간의 외교관계 등으로 인해 건립이 무산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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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소녀상을 건립하고자 하는
독일 내 한인 단체와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 현지 독일인 덕분에 소녀상은 독일 내 6곳에 건립될 수 있었다 . 소녀상과 함께 설치된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세겨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수많은 소녀들과 여성들을 끌고 가 성노예를 강요했다. 이 평화의 상은 소위 ‘위안부’의 고통을 기억한다. 1991년 8월 14일 침묵을 깨고 세계적으로 그러한 범죄의 재발을 반대하는 생존자들의 용기를 기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