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3개월이 지나도록 상하이를 점령하지 못하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일본군은 적개심을 품게 되었고, 양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1931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중국 침략은 1937년 전면전으로 본격화되었다. 중국과 일본은 중국 영토 내에서 전쟁을 치렀고, 영토의 일부는 일본군의 점령지가 되었다. 상호 적대적인 상황에서 일본군은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중국 여성을 ‘위안부’로 삼았다. 주민들을 잔인하게 살상하거나 모욕을 주고, 강간하는 등의 각종 폭력을 행사하면서 중국 내 여성들을 연행, 징집하였다.
일본군은 비밀리에 중국인 여성을 ‘위안부’로 징집하라고 했으나, 실제로 징집은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위안소의 운영을 위해 주민들의 재산과 노동력을 빼앗고, ‘위안부’가 된 여성을 물건처럼 취급했다. 이 피해는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지역의 여러 공간과 주민들의 기억에 남겨지고, 피해자 여성의 인생에도 영향을 미쳤다.
중일전쟁
일본군은 빠른 시일 내 중국을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37년 화북지역을 시작으로 빠르게 남쪽을 침략해 나갔다. 같은 해 8월에는 군력을 총동원하여 상하이를 공격하였다. 하지만 중국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3개월이 지나도록 상하이를 점령하지 못하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일본군은 적개심을 품게 되었고, 양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가는 곳마다 그 마을의 모든 재산을 약탈하고, 주민들을 모두 죽이고, 가옥을 불태우는 삼광작전을 개시했다.
중국 공산군과 벌인 유격전(遊擊戰)과 기습전은 일본군에게 군인이 아닌 민간인도 언제든 자신들을 공격할 수 있다는 공포심과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일본군은 중국 공산군과 민간인을 격리하기 위해 일정 지역의 주민을 완전히 쫓아내고 사람의 통행을 막는 정책을 펼치거나 격전지와 점령지의 주민을 공격했다. 민간인 포로를 잔혹하게 고문·살해하는 일 또한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